로제트(Rosette) 식물의 눈치게임
로제트 식물은 짧은 줄기에 많은 잎이 밀집해 장미 모양으로 겹겹이 포개진 식물을 말하며 여러해살이도 있지만 두해 살이 식물이 많다. 이른 봄이되면 주위에 흔히 만날 수 있고 우리의 미각을 깨워주는 냉이가 바로 대표적인 로제트 식물이다. 냉이 이외에도 로제트 식물로는 민들레, 상추, 질경이와 같이 우리와 친분이 있는 식물들이 많다. 그 만큼 우리 주위에서 흔히 만날 수 있고 익숙하지만 이런 로제트 식물이 어떻게 해서 지금까지 살아 남았고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당연히 궁금증을 자극하는 영역이고 숲해설가가 답을 줘야 하는 영역일 것이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한다.
아마 로제트 식물의 고향은 광활한 사바나 초지일 것이다. 살며시 눈을 감고 먼, 먼 과거 광활한 사바나 초원으로 돌아가 보자. 온 초원은 파릇파릇한 풀들로 끝없이 펼쳐져 있을 것이고 이를 에너지원으로 해서 살아가는 초식 동물들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더 없이 여유롭고 평화롭게 비춰지지만 입장을 바꿔 먹이가 되는 식물의 눈에서 보면 어쩌면 세상에 둘도 없는 끔찍한 상황이었을 지도 모른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름의 전략을 동원하고 영겁의 기간동안 수 많은 시행착오와 적응을 통해 지금에 이르렀을 것이다.
모든 생물들은 새끼를 낳거나 씨를 퍼트려 대를 잇고 종을 유지하는 것이 지상의 목표겠지만 우선 그렇게 되기까지 살아 남아야 그 이후의 이야기가 가능해 진다.
여유를 갖고 로제트 식물의 일생을 한 번 관찰해 보면 이들이 세운 생존전략 얼마나 정교하고 효율적인지 아마 탄복하게 될 것이다.
초식동물로부터 살아남기
로젝트 식물 최대의 적은 초식동물과 주위의 자기보다 키큰 식물일 것이다. 거대한 초식동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선 이들의 눈에 잘 띄지 않아야 한다. 모난 돌이 정맞는다는 말처럼 다른 식물들 보다 키가 커지게 되면 이들의 눈에 띄게 되고 뜯어먹히게 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다. 키가 커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부분의 식물들은 생장마디가 있다. 이 마디를 기준으로 잎이 나고 가지가 뻗어 나간다. 즉 대나무처럼 마디가 길어지면 그만큼 키가 커지는 것이다. 하지만 로제트 식물은 마디를 퇴화시키는 전략을 사용했다. 잎과 잎사이의 마디를 발달시키지 않음으로 잎은 자라지만 키를 키우지 않는 목적을 달성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로제트 식물의 잎은 비슷한 높이에서 오밀조밀하게 다발로 뭉쳐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잎들이 서로 포개져 광합성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로제트 식물은 여기서 지혜를 한번 더 발휘한다. 잎들끼리 서로 밀착되어 그늘이 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조금씩 어긋난 형태로 배열하고 아래쪽 잎일수록 잎자루가 길게 내어 전체 잎이 골고루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위에서 보면 장미꽃의 꽃잎 배열과도 흡사해서 프랑스어로 작은 장미를 뜻하는 로제트( Rosette)라는 이름을 얻게된 배경이기도 하다.
이런 전략을 사용하면서 의도치 않은 잇점도 얻게 된다. 키가 크지 않는 상태에서 잎만 커지다 보니 땅바닥을 점차 덮어 버리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또한 군락이 형성되면 경쟁자들의 씨앗이 운좋게 싹을 틔우더라도 시골에서 잡초를 억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멀칭 비닐처럼 잎으로 그늘을 만들어 덮어버려 자연스럽게 생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또한 방사형으로 퍼진 잎들은 빗물을 효율적으로 모으는 역할을 한다. 이는 빗물이 잎 중앙부분으로 흘러내려 깔때기처럼 뿌리로 바로 스며 들도록 하므로 가뭄에 단비가 내리면 그만큼 다른 식물보다 유리한 조건을 갖게 되는 것이다.
배고픈 초식동물에 눈에 띄면 밟히거나 뜯어 먹히게 되는 운명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죽지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당연히 로제트 식물은 스스로 고민했을 것이다. 우선 키를 키우지 않아 상대적으로 밟히거나 뜯어 먹힐 확률은 낮아졌지만 그래도 초식동물들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로제트 식물이 세울 수 있는 전략은 뿌리를 발달시켜 초식동물의 입속으로 송두리째 뽑혀 들어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대부분의 로제트 식물이 곧은뿌리(taproot)의 형태를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른 봄 냉이를 캐 본 사람이면 대부분 알 것이다. 냉이 뿌리가 얼마 만큼 땅 속 깊이 박혀 있는지, 또한 맨손으로 뽑아내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는 것을.


이 전략은 잎이 뜯겨 나가거나 밟히더라도, 뿌리가 땅속으로 최대한 깊이 비집고 들어가 온전히 살아 남는다면 이후에 다시 잎을 틔우고 씨를 생산할 수 있는 기회를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로제트 식물의 강인한 생명력을 엿볼 수 있다.
번식을 위한 전략
앞서 로제트 식물은 두해살이 식물이 많다고 했다. 왜 한해가 아니고 두해일까? 당연히 그 이유에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둘째 해에 번식에 집중한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는데 그 이유를 들여다보면 로제트 식물의 또다른 생존전략과 지혜를 만날 수 있다.
앞에서 로제트 식물의 최대 적은 아무래도 초식동물일 것이라고 했다. 살아 남으려면 무조건 이들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최고일 것인데 그렇다면 이들의 눈에 띄지 않으면서 어떻게 씨앗을 만들고 번식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예상했을 것 같은데, 이 모든 과정을 속전속결로 해치워 버리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으로 수분을 위해 꽃은 곤충들의 눈에도 쉽게 띄어야 하므로 되도록이면 높은 곳에 꽃을 위치시켜야 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하여 단기간에 전략을 실행으로 옮기려면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로 했음을 예상할 수 있다. 즉, 광합성으로 생성된 에너지 만으로는 키를 키우고 씨앗도 맺으려면 일반 식물들도 빠듯한 양인데 로제트 식물처럼 단기간에 거사를 치르기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그래서 로제트 식물은 한 해 동안은 오롯이 번식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축적하는 기간으로 활용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든 영양분은 가장 안전한 곳인 뿌리에 저장을 한다. 이는 로제트 식물 대부분이 뿌리가 상대적으로 발달하고 여기에 영양분이 많이 분포한 이유이기도 한다.
이렇게 한 해동안 로제트 상태로 축적한 에너지는 이듬해 아낌없이 방출하게 된다. 이른 봄, 주위의 다른 식물들이 키를 키우기 전에 로제트 식물들은 단기간에 꽃대를 올리고 꽃을 피운다. 이렇게 해야만 안전하면서도 곤충에 의한 수분 확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꽃대가 웃자라는 현상을 영어로 볼팅(Bolting)이라고 한다. 이 현상이 발생하면 로제트 식물은 꽃대와 꽃을 만드는데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사용하고 상대적으로 잎으로는 영양분을 적게 보낸다. 로제타 식물들은 필연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선택이지만 상추와 같은 잎채소를 식재료로 하는 인간들이게는 꽃대가 올라가면 맛이 떨어지고 채소 농가에서는 수확량과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하니 아이러니 하기도 하다.

사바나에서 우리 동네까지
사바나의 드넓은 초지가 고향인 로제트 식물이 어떻게 해서 상대적으로 추운 기후인 우리 동네까지 이동해 왔을까? 추위를 견디는 특별한 장치가 있었을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이들의 생태에서 찾을 수 있다.
땅바닥에 납작 붙어 있는 잎들은 땅의 열기를 이용해 추운 지역에서도 체온 유지할 수 있었으며 낮은 키는 건조한 공기와 매서운 바람을 피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영하의 날씨로 주위에 얼음이 얼더라도 자체적으로 축적해 놓은 당분의 도움으로 추운 겨울도 얼지않고 거뜬히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눈이나 주위의 큰 풀들이 말라 이들을 덮을 경우 추운 겨울이지만 이들에게는 따뜻한 이불 역할도 했을 것이다.
로제트 식물이 과학적으로도 놀라움을 주는 이유는 겨울을 나기 위해 안토시아닌(Anthocyanin) 색소를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안토시아닌은 기온이 내려갈 경우 냉이, 단풍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붉은색 색소로 흡수한 빛 에너지를 열(heat)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하다. 또한, 식물의 증산작용은 뿌리에서 흡수한 수분이 잎의 아래 면을 통해 수증기 형태로 배출되는 현상으로 로제트 식물의 경우 잎 아래 면이 바닥에 붙어 있으므로 광합성은 최대로 하되 수분손실은 최소로 줄여주어 겨울을 나는 데에도 이런 과학적 접근이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로제트 식물은 비록 사바나에서 시작했지만 조금씩 영토를 넓혀 사계절이 뚜렷한 그리고 혹한 겨울이 있는 우리동네 근처까지도 먼 시간을 돌아 찾아오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로제트 식물들의 눈치게임
우리 근처에 흔히 만날 수 있는 로제트 식물들을 무심코 지나치기도 하지만 이들이 생존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왔던 고군분투와 전략을 알고나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그냥 나온말이 아님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이런 배경을 알고나서 짧은 기간에 금새 얼굴을 내밀었다 사라지는 로제트 식물의 꽃을 보게되면 포식자인 초식동물의 눈을 피하기 위해 벌이는 쓰릴있는 눈치게임 아니면 두더지게임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을 하게되면 당사자인 로제트 식물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도 모르게 입가에 아버지 미소가 번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2025.04.11 by Skanto
참고자료
- http://www.botanydictionary.org/rosette-plant.html
- https://en.wikipedia.org/wiki/Rosette_(botany)
- https://anitasanchez.com/2012/10/25/basal-rosettes-life-in-the-flat-lane/
- https://treasurecoastnatives.wordpress.com/category/rosettes/
- https://www.weekand.com/home-garden/article/rosette-plant-18023770.php
-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0960982222004894
- https://kb.osu.edu/server/api/core/bitstreams/591b12e9-9a87-5222-b905-31d25fcb51f8/content
- https://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25/01/06/20250106000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