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괴불나무 오디세이
올가을은 내년에 비하면 그나마 덜 더운 계절로 기록될 거라는 뜨겁던 여름과 곧 다가올 겨울 사이에 잠시 끼인 계절로 전락해 버린 느낌이다. 그래도 결실의 계절인 만큼 사람들은 그간 경주해 온 노력들을 정리하는 시간들로 채워나갈 것이다. 개인적으로 올 한 해를 몇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단연 숲해설가협회 대표 동아리인 목본연구회 활동을 여기에 포함시킬 것이다.
밖에 내놓기 부끄러웠던 나무에 대한 지식은 매달 이어진 동아리 활동과 해박하신 강사님들의 지식 나눔 덕분으로 일취월장한 느낌이다. 그간의 활동 중 기억에 남는 활동을 꼽는다면 5월 답사지였던 횡성 청태산 답사가 단연 으뜸이다. 먼 거리에 비뿐만 아니라 쌀쌀하기도 해서 좋든 싫든 기억 한편에 확실히 자리 잡고 있을 회원님들이 많으리라 본다. 개인적으로 청태산을 택한 이유는 강사 선생님이 보여주신 왕괴불나무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애정 때문이다. 이 장면이 나를 자극하였고 호기심 발동으로 이어졌다. 과거 숲해설가 양성과정 수업에서 강사 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 나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 나무를, 한 해 동안,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관찰해야 한다는 말이 귓전에 맴돌던 터라 이번에 제대로 실천해 보기로 다짐 한 계기이기도 하다.
이 글은 청태산 왕괴불나무와 인연을 맺은 지난 5월을 시작으로 자료를 찾고 학습했던 내용과 얼마 전 10월까지 모두 일곱 차례 관찰한 왕괴불나무의 성장 과정을 공유하는 성격이 강하다. 말 그대로 성장 과정을 주제로 한 터라 제목을 “왕괴불나무 오디세이”라 붙였지만 5월 이전의 시기가 누락 되었을 뿐만 아니라 초심자의 눈높이로 작성한 터라 너무 많은 기대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왕괴불나무가 속한 인동과 인동속 나무들에 대한 이해를 곁들인 다음 이어가면 도움이 될 것이다. 우선 사실을 기반으로 살펴보자.
인동가족 나무들
국립생물자원관 자료에 따르면 인동속(honeysucles) 나무는 우리나라에 모두 18종이 있다. 왕괴불나무와 더불어 숲해설가라면 비교적 자주 들었을 법한 괴불나무, 올괴불나무, 길마가지나무, 청괴불나무 외에도 개인적으로 처음 들어보는 나무들이 많다. 이들 나무들을 모두 구분하고 해설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렇게 하기에는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수적이다. 그렇더라도 어떤 기준을 정해놓고 접근한다면 비교적 적은 노력으로도 높은 학습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괴불나무속 나무들의 꽃 모양은 어느 정도 비슷하므로 꽃이 피는 시기와, 나중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열매의 유착 정도를 기준으로 학습한다면 초보자들도 비교적 쉽게 구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3월에 꽃이 피는 나무와 5월에 피는 나무는 서로 헷갈리지 않을 것이고, 열매 두 개가 서로 떨어졌는지 반쯤 유착되었는지 아니면 온전히 유착되어 하나의 열매처럼 보이는지로 구분한다면 비교적 수월할 것이다. 고수라면 잎과 가지 모양, 그리고 털 유무 등으로 구분할 수 있겠지만 초심자에게는 너무 멀리 있는 내용이라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길마가지나무는 열매가 길마 즉, 소나 말의 등에 짐을 싣기 위해 얹는 일종의 안장을 닮아 붙은 이름으로 2~4월 비교적 이른 봄에 만날 수 있다. 꽃은 잎보다 먼저 어린 가지의 아래쪽 잎겨드랑이에서 2개씩 피며 노란빛이 도는 흰색이다. 두 개의 열매는 절반까지 유착되어 ‘ㅅ’자 또는 길마 모양이 된다.
올괴불나무는 이름에서 보듯이 이른 봄에 만날 수 있는 나무로 3~4월에 잎보다 먼저 묵은 가지에서 꽃을 피운다. 그리고 꽃밥이 붉은 보라색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열매 두 개는 밑부분에만 유착이 발생한다.
괴불나무 꽃은 5~6월에 잎 겨드랑이에서 난 꽃대 끝에 2개씩 달리며 흰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한다. 열매 두 개는 가까이 있지만 서로 떨어져 있어 비교적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청괴불나무 꽃은 6월에 새 가지 잎겨드랑이에 달려 핀다. 열매 두 개는 윗부분까지 유착이 발생해 흡사 하나의 열매로 보이기도 한다.
왕괴불나무
이제 이 글의 주인공인 왕괴불나무가 남는다. 이름에서 풍기는 아우라 덕분인지 무언가 특별한 느낌이 전해진다. 더구나 청태산에서 강사 선생님이 보인 특별한 관심으로 인해 기대감이 더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왕괴불나무가 이런 특별한 관심의 대상인 이유는 희소성과 더불어 우리나라와 관련이 깊을 것이라 유추해 봤다. 그래서 국립생물자원관을 찾았었고 여기서 그 답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특이하게도 왕괴불나무 설명에 이어 “국외반출 승인대상”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국외반출 승인대상은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생물다양성의 보전을 위하여 보호할 가치가 높아 국외로 반출할 경우 기후에너지환경부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기후에너지환경부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 생물자원을 말한다.
그렇다. 왕괴불나무는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해 보호할 가치가 높은 나무였던 것이다. 그런데 고개가 끄덕여지긴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더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생물의 다양성은 커야 좋은데 보호할 목적으로 국외 반출을 제한한다는 것은 모순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국 영국왕립식물원(Royal Botanic Gardens, Kew)에서 왕괴불나무의 국제적 분포를 확인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는데 그 순간 가슴이 웅장해지면서 그간 품었던 모든 의문이 싹 사라지게 되었다.

이 분포도를 보면 우리나라가 왕괴불나무의 자생지이며 아직 해외에 소개되지 않은 순수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만 봐도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나무인지 직감할 수 있다. 일본도 자생지로 나오긴 하지만 왕괴불나무 열매는 7~8월에 붉게 익는다는 점과 우리나라에서 여름을 보내고 남쪽으로 이동하는 여름철새의 이동경로와 그 시기를 종합해 보면 왕괴불나무 태초의 고향은 우리나라임이 분명해 보인다. 이 정도의 확인만으로도 강사선생님이 왜 그렇게 이 친구에게 애정과 관심을 보였는지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는다.
더구나 왕괴불나무는 우리나라에서도 강원도(청태산등)와 전라도(덕유산, 백야산, 지리산 등) 및 제주도의 높은 산지에서 드물게 자란다고 하니 특히 숲해설가들 사이에는 얼마나 귀한 존재이고 인싸(insider)인지 어림 짐작할 수 있다.
이 정도라면 왜 이 친구의 성장을 보려고 청태산을 일곱 차례나 찾았는지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첫 만남
오월의 청태산은 목본연구회 답사에(5.10)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쌀쌀한 날씨와 우중의 청태산은 오히려 숲속 친구들에게는 별일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 간 이 친구들에게는 이런 날이 하루 이틀뿐이었겠는가. 강사님의 소개로 처음 만난 왕괴불나무는 다소 초라한 느낌이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 나의 무지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친구의 위치는 황벽나무를 이정표로 삼는다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 힌트에 유념해서 데크길을 걷다 보면 누구든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박쥐나무처럼 꽃은 잎사귀 아래에 숨어 쉽게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아마도 청태산 왕괴불나무의 꽃을 관찰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는 5월 초가 아닐까 한다.
왕괴불나무 꽃은 인동덩굴처럼 흰색에서 점차 노란색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노란색이다. 연구자료를 찾아보면 색의 변화는 카로티노이드(carotenoid, 적황색 색소)의 축적 패턴과 이 색소로부터 파생된 휘발성 아포카로테노이드(apocarotenoid)의 방출과 관련이 깊다고 한다. 특히 아포카로테노이드는 수분 매개자인 곤충을 유인하는 역할을 한다고 하니 잎사귀 아래 꽃을 숨긴 왕괴불나무는 처음부터 수분 매개자의 눈에 띌 요량으로 노란색을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또 다른 특징으로 꽃대와 잎자루가 모두 길지만 특이하게도 꽃대(10mm 이상)가 잎자루보다 더 길다는 것이 동정포인트가 될 수 있다.
너에게로 가는 길
처음 만나고 일주일이 흐른 5월 중순(5.17)에 다시 찾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이 더 지나버리면 이 친구의 위치를 잊어버릴 것 같아서다. 그렇다고 매주 찾을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이참에 청태산 나무지도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더듬으며 목본연구회 탐방 때 기록해 둔 숲친구들을 하나하나 다시 꺼내 이들의 위치를 GPS로 기록했다. 아쉽게도 길게 이어진 데크길은 휴대폰 지도에 나오질 않아 다시 한번 더 같은 속도의 걸음으로 걸으면서 데크길의 경로 데이터도 만들어 냈다. 이런 일을 해온 나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터라 수집한 데이터를 집으로 가져온 후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데크길과 나무지도를 완성했다.

다시 찾은 왕괴불나무. 이 친구들에게는 일주일이 긴 시간이었던 것일까? 그 새 꽃잎은 모두 지고 그 자리에 작고 앙증맞은 열매를 달고 있는 것이었다.
이때 발견한 특이한 점은 아주 작은 열매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아래쪽에서 유착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열매 2개는 가운데 부분까지 유착된다고 설명하고 있는 도감의 내용을 직접 목격한 순간이었다. 처음 마주한 현상이라 신기하기도 했거니와 호기심 발동으로 이후 관련자료를 찾아 알아본 내용을 옮기면 이렇다.
씨방 유착 현상
인동속은 어느 부위의 조직에서 유착이 발생하고 어느 정도로 진행되느냐에 따라 종이 달라진다고 한다. 인동속은 꽃이 2개 또는 3개 달리는 것이 있다. 꽃이 3개 달리는 경우, 가운데 꽃의 소포옆(bracteole) 옆구리에서 2개의 꽃이 자라나며 가운데 꽃의 소포엽 2개에 더해 양쪽 2개의 꽃에서도 2개의 소포엽이 형성되며 이는 나중 단계로 가면 포엽(bract)으로 바뀌게 된다(A). 꽃이 2개 달리는 경우는 진화 과정에서 가운데 꽃이 소실된 상태로 아래 그림의 C와 같이 양쪽 씨방이 서로 맞닿게 된다.

이 단계 이후 두 씨방의 유착 정도는 다양한 단계로 진화를 겪게 된다. 게다가, 서로 접한 두 꽃의 소포엽 4개도 서로 밀착하여 다양한 형태로 유착되었을 수 있다. 어떤 종은 4개의 소포엽 모두가 유착되어 두 씨방 밑부분은 작은 고깔(cupule) 모양으로 만들어진다. 이 고깔 모양이 자라나서 부분적 또는 온전하게 두 씨방을 감싸는 형태가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4개의 소포엽이 유착되어 두 씨방을 온전히 감쌀 경우 완전한 깍지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 깍지가 자라나면 안에서 성장하던 씨방이 깍지를 부수고 나오거나(K) 그렇지 못할 경우 속에서 완전히 성숙하게 된다(J).


이런 유착을 거치면서 인동속 나무들은 완전히 새로운 구조로 진화 과정을 겪게 된다. 진화 과정을 통해 생식기관과 통합하여 자신을 보호하거나 수분매개체를 유인하거나 씨를 퍼뜨리려는 목적으로 변형을 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래의 그림은 인동속의 종이 진화 과정에서 다양한 조합으로 유착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참고로, 그림에서 최상단의 시조가 되는 종은 붉은 인동(Periclymenum)이며 이들 조합 중 일치하는 종은 현재 12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세한 설명은 제한된 지면상 생략하기로 한다.

특히 포엽을 키운 일부 종은 고산지대까지 서식하며 이런 곳에서의 포엽은 자외선으로부터 더 잘 보호하고 꽃가루가 빗물에 씻겨나가는 것을 방지하며 꽃과 열매의 온도를 높여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성장기로 접어들다
보름이 흐른 즈음인 6월 초(6.4), 이때쯤이면 열매가 한창 성장단계에 접어들었으리란 기대감으로 이 친구를 다시 찾았다. 다행히 이번에는 예상이 적중했다. 작았던 열매는 제법 통통하게 살이 올랐고 유착 상태도 확연히 눈에 띄었다.
또한, 전체 잎 색깔도 짙은 녹색으로 변했을 뿐만 아니라 잎을 만져보면 지난번의 보들보들했던 느낌은 사라지고 약간 거친 느낌이 든다. 마치 20~30대 청년기 접어든 사람을 대하는 느낌이랄까.
성장을 지나 성숙으로
도감을 보면 이 친구의 열매가 장과이면서 7~8월에 붉은색으로 익는다고 나온다. 이 내용을 근거로 6월 중순쯤(6.22)이면 조금씩 착색이 시작될 것이란 상상을 하면서 이 친구를 찾았다. 사람도 30대가 되면 더 이상의 성장은 없는 것처럼 이 친구도 외형적 성장은 다 한 것 같다. 이제 내실을 채우는 단계로 보이며 약간 이른 감이 있긴 하지만 달린 열매 중 몇 개는 붉은색으로 변하기 직전인 것도 보인다. 이 성장 속도로 유추해 봤을 때 약 1~2주 안에 모두 빨갛게 익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이날 관찰은 비교적 빠르게 마무리했다.
함께하지 못한 결실의 순간
게으른 나를 탓하는 것이 먼저일 것 같다. 덥기도 하거니와 주말마다 여러 일정이 겹쳐 한동안 이 친구를 찾지 못했다. 익는 시기가 7~8월이므로 약간의 기간은 남아 있으리란 기대감으로 8월의 시작과(8.1) 함께 찾았지만 허탈함은 감출 수가 없다. 그래도 찾아오는 나를 위해서인지 새빨갛게 익은 열매 하나를 홀로 남겨 두었다. 보자마자 맛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무심코 따서 잎에 넣었다. 과육이 생각보다 달콤했다. 입안에 맴도는 조그만 씨앗 두 개는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땅이 닿는 곳으로 흩어 주었다. 이 정도의 달콤한 맛이라면 아마도 근처를 지나가는 새들에게는 여기가 소문난 맛집쯤은 되지 않았을까 한다.
서로 사촌 격인 괴불나무의 씨앗 확산과 관련된 흥미로운 자료가 있어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다.
괴불나무가 성공적으로 영역을 확장시킨 주요 요인은 번식 방법에 있다. 알려진 것처럼 떨기나무는 새나 초식 동물들이 이들 열매를 먹고 씨앗을 확산시킨다. 괴불나무 열매는 가을철 이주 시기가 되면 남쪽으로 이동하는 철새들의 먹이가 되며 이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 괴불나무가 발견된다. 하지만 괴불나무 열매는 토종의 다른 떨기나무와 비교했을 때 영양성분 즉, 지방 성분이나 에너지 밀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확산 방식으로 인해 영양분이 풍부한 토종 열매보다 괴불나무 열매는 점점 더 흔해지게 된다. 이 결과로 철새들은 상대적으로 영양분이 적은 열매를 먹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들 씨앗은 철새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 확산되고 다시 이들에 의해 소비되므로 괴불나무의 확산은 더욱 증폭된다. 이에 더해 동일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더 많은 열매를 먹어야 하므로 확산되는 씨앗의 양은 훨씬 더 많아지게 된다. 개인적 생각이긴 하지만 왕괴불나무의 유착 현상을 보면 새들을 속여 더 많은 씨앗을 확산시키려는 과욕적인 전략이 작동한 것은 아닐까 유추해 본다.
아낌없이 내어 주다
8월의 마지막 토요일(8.30) 가을로 접어드는 초입에 이 친구를 찾았다. 거의 한 달 만이라 약간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그 모습을 마주한 순간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주위의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이 친구의 잎사귀는 그야말로 상처 투성이었다. 자세히 보니 벌레들이 갉아 먹은 흔적이 분명했다. 이 친구에게는 불행으로 보이지만 덕분에 든든하게 배를 채운 벌레들은 더 생산적인 일에 매진했을 수 있다. 아마도 이 친구를 불행으로 보는 것은 사람의 관점이 아닐까 한다. 어쩌면 자기의 소임을 다 한 이 괴불나무는 주위의 다른 친구들에게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고 더불어 사는 방법을 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죽지만 죽지 않는다
아마도 올해 이 친구를 마주할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10월 초(10.2) 시간을 내어 청태산을 찾았다. 예상했던 것처럼 아쉽게도 자신의 앞날을 예견하고 그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쓸쓸해 보인다. 이 상태라면 데크길 탐방로 바로 옆에 있어도 지나가는 사람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지난 5월부터 지금까지 이 친구가 걸어온 시간의 궤적을 돌이켜 보면 분명 화려했던 날도 있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생과 겹쳐지기도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어떻게 보면 이제 한 살을 더 먹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친구는 긴 겨울에 앞서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고 돌아오는 봄에는 다시 주위의 도움으로 잎을 내고 꽃을 피워 새롭게 한 해를 시작할 것이다. 그때 즈음이면 나는 분명 이 친구를 다시 찾아 못다 한 이야기를 완성할 것이다.
마치며…
글을 쓰고 나니 장황한 내용이 되어버렸다. 아마도 왕괴불나무를 처음 접하고 신기하기도 했거니와 알아가면서 공유하고 싶은 내용들이 많아서 일 것이다. 그래도 왕괴불나무의 한 해 살이를 일대기처럼 엮어 가면서 관련 내용들을 중간에 끼워 넣으려고 의도했으니 너그러이 봐주었으면 한다.
이 긴 이야기의 발단은 다름 아닌 목본연구회 동아리 활동이다. 매달 새로운 탐방지를 다니며 그 지역과 지형에 적응해 온 목본 친구를 하나씩 알아가는 것은 설렘의 연속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잘 이끌어 주시는 강사선생님과 하나라도 더 알아내기 위해 질문을 서슴지 않으시는 회원님들을 보면 나를 더욱 자극하게 만든다. 이 공간을 빌어 올 한 해 같이하신 목본연구회 모든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마지막으로, 왕괴불나무는 우리나라가 자생지이다. 이와 관련된 내용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엮어 전달하면 분명 이를 접하는 사람들은 신기해하고 관심을 보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특히 요즘처럼 K-팝, K-드라마, K-푸드 같이 K-컬처가 세계적인 트렌드로 확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토종의 나무 이야기를 발굴하고, 다듬고, 전달하면 K-숲해설도 머지않아 이 트렌드에 동승할 것이라 확신한다. 그때가 온다면 그 역할의 주인공은 숲해설가 이외에 또 있을까 생각한다.
2025.11.13 skant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