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한 힘, 물푸레나무

유연한 힘, 물푸레나무

세상에는 단단해서 오래가는 것이 있고, 유연해서 오래가는 것이 있다. 물푸레나무는 후자다. 강하면서도 잘 꺾이지 않고, 깊이 휘어지면서도 본래의 형상을 잃지 않는다. 오랜 세월 인간의 삶 가장 가까운 곳에서 특별한 역할을 해온 이 나무는, 강인함과 유연함이라는 모순된 가치가 어떻게 한 몸 안에서 아름답게 공존할 수 있는지 묵묵히 증명해 보인다.

청태산 물푸레나무

물푸레나무의 학명은 프락시누스 린코필라(Fraxinus rhynchophylla)다. 우리 산야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토종 낙엽활엽수로, 목재를 다루는 이들에게는 ‘애쉬(Ash)’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하다. 이름에 얽힌 유래가 시적이다. 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면 투명하던 물빛이 이내 푸르스름한 잉크처럼 번져나간다고 하여 ‘물푸레’라 불렸다. 예전에는 이 나무를 태운 재로 승려들의 옷을 물들이기도 했고, 해열, 진통, 소염, 통풍 등의 약재로도 귀하게 쓰였으니, 한 그루의 나무가 인간의 생활과 문화, 의술에까지 깊숙이 스민 셈이다.

나무의 껍질을 물에 담그면 푸르게 변한다.

물푸레나무는 보통 100년 이상의 시간을 견디며 20미터가 넘는 거목으로 자라난다. 수분이 풍부한 산기슭에 깊고 단단한 뿌리를 내린 채 숲의 상층부를 이룬다. 넓게 펼쳐진 나뭇잎들은 짙은 그늘을 만들고, 곧게 뻗은 줄기는 숲의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처럼 의연하다. 물푸레나무의 진짜 가치는 눈에 보이는 크기나 외형이 아니라, 품고 있는 숨은 성정에 있다. 물푸레나무 목재는 돌처럼 단단하면서도 대나무처럼 탄성이 뛰어나다. 충격을 부드럽게 흡수하면서도 강한 힘을 받아내며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이러한 독보적인 특성 때문에 과거에는 전장을 누비는 창과 활, 거친 노동을 견디는 도낏자루나 농기구 손잡이의 단골 재료였다. 또 우리 조상들도 같은 이유로 송아지의 코를 뚫어 소로 길들일 때 이 나무로 만들었다. 강하게 당겨도 부러지지 않고 둥글게 휘어지는 성질을 삶의 지혜로 알아본 것이다.

이 유연한 역동성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시속 150킬로미터가 넘는 강속구의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야구 배트와 격렬하게 부딪히는 하키스틱의 중심에는 늘 물푸레나무가 있다. 동시에 밝고 고운 나뭇결 덕분에 현대인의 공간을 채우는 고급 가구와 인테리어 소재로도 사랑받는다. 다만, 사계절의 온도와 습도 변화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이 나무를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충분한 건조와 숙련된 가공 기술이 필수다. 좋은 재료일수록 인간에게 더 많은 기다림과 정성을 요구하는 법이다.

그렇기에 강함과 유연함을 함께 지닌 물푸레나무는 인간의 정신세계에서도 특별한 토템이었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우주수(宇宙樹) ‘이그드라실’이 바로 이 물푸레나무다.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을 연결하며 세계의 무게를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으로 숭배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돌처럼 단단하다고 하여 석단(石檀)이라는 별칭으로 불렀고, 선비들이 먼 길을 떠날 때 봇 짐 속 휴대용 벼루로 만들어 애용했다. 동서고금 거대한 우주를 떠받치는 신화적 서사부터 선비의 품격 어린 필수소품까지 아우른 셈이다.

지금도 숲의 물푸레나무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흔들림은 단순한 흔들림의 몸짓이 아니라 제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일 것이다. 상처를 품고도 끝내 부러지지 않는 것, 흔들림마저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 것. 우리 삶도 이와 닮아 있다. 너무 단단하기만 하면 어느 순간 부러지고 만다. 물푸레나무는 강함이 결코 경직됨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진정한 힘은 비바람의 방향을 따라 기꺼이 휘어질 줄 아는 유연함과, 바람이 지난 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회복력에 있음을 푸른 언어로 말해주고 있다.

출처 : 경남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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