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h, Butterfly, and Pigeon
자세히 보면, 나방과 나비의 뚜렷한 차이점 2개를 발견할 수 있다. 나비는 예쁜 색을 띈다(컬러TV). 예를 들어, 공작나비(peacock butterfly)는 새 또는 다른 적들로부터 자신을 보하하기 위해 양쪽 날개에 커다른 눈을 과시한다.

나비의 몸과 날개에는 비교적 털이 적다. 따라서 적들이 보게되는 시각적 이미지는 반짝이고 명료하다. 이와 반대로 나방은 주로 단색을 띄며(흑백TV) 회색과 갈색이 주된 색이다. 왜내하면 이들 나방은 낮에는 주로 나무 껍질이나 가지에 앉아 잠을 자고 밤이 되기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낮 동안에는 활동이 둔하고 쉽게 새들의 먹이가 된다. 새들은 예리한 눈을 통해 색상 변화를 구분해 낼 수 있다. 날개 색과 어울리지 않는 나무의 껍질에 잘못 앉았다면 낭패다. 왜냐하면 엉뚱한 나무에 앉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무 감별능력이 떨어지는 나방은 낮 시간을 살아남지 못하며 나비의 관점에서 보자면 밤 시간(?)도 살아남지 못한다.
살아남기 위해, 나방과 나비는 환경에 적응을 한다. 얼룩나방(peppered moth)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얼룩나방은 날개의 넓이가 2인치 정도되며 하얀 날개 위에 검은색의 작은 반점들이 있다. 이는 정확히 자작나무 껍질의 색상이며 얼룩나방은 이 나무를 찾아 휴식을 취한다. 말하자면, 영국에서 자작나무는 대략 1845년까지 흰색을 띄었다. 이후, 산업혁명과 석탄연료가 엄청난 양의 매연(검댕이)을 공기중에 나뿜었고 이는 검은 매연 층이 나무 껍질위에 쌓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나무 색에 위장을 잘 했던 나방은 이제 눈에 띄게 되었으며 일부 예외의 색을 띄는 나방을 제외하고 수십만 마리의 얼룩나방들은 새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이들 예외색을 띄는 나방들 항상 존재하며 검은색의 양이 있는 것처럼 이들 날개는 검은색을 띄었다.(이때까지만 해도 사형선고 였음) 하지만 지금은 검은색 나방이 승자가 되었다. 이들은 살아남은 나방이 됐고 이것이 몇 년 후 대부분의 얼룩나방이 검은색을 띄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1960년대가 되어서야 공기질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지면서 상황이 변하게 되었다. 자작나무들은 깨끗해졌는데 이는 하얀색으로 다시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것이 1970년에 관찰된 대부분의 얼룩나방의 색깔이 다시 하얀색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밤이되면 사물이 말그대로 다르게 보인다. 벌레를 먹는 새들은 밤에 나뭇가지에 앉아서 잠을자기 때문에 색깔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냥꾼이 이제 등장한다. 바로 박쥐이다. 이들은 사냥을 할 때 시력보다 초음파에 더 의존한다. 높은 주파수의 신호를 보내고 물체 또는 잠재적인 먹이감에 반사되어 돌아오는 메아리를 듣는다. 시각적인 위장술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박쥐는 귀를 이용해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방은 자신을 청력에서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이렇게 할까? 한가지 가능성은 소리를 반사시키는 것이 아니라 흡수하는 것이다. 이것이 많은 나방들이 두터운 털로 덥펴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박쥐가 내는 신호를 흡수하거나 좀 더 정확하게 말해 신호를 뒤썩어서 모든 방향을 분산시켜 버린다. 나방의 섬세한 형상을 얻는 대신 박쥐의 뇌에서는 나무 껍질 조각처럼 보이는 흐릿한 무언가를 얻게 된다.
비둘기(Pigeons)는 우리와는 완전히 다르게 본다. 비둘기는 우리처럼 시력에 의존하는 시각적인 돌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보기 위해서는 햇빛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삶의 일부분인 모든 세부사항 외에도 비둘기는 공기중의 다른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비둘기는 하늘에서 편광된 빛의 패턴(polarized pattern of light) 본다. 말하자면 빛의 파장이 진동하는 지리적인 방향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편광은 북극을 가리킨다. 이는 낮동안에 보는 모든 곳에서 비둘기는 나침반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메시지 전달 비둘기(carrier pigeons)가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방향을 잘 찾고 항상 집으로 되돌아 오는 길도 찾아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