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걸(Lab Girl)
유시민 작가의 책 “문과남자의 과학공부”를 읽으면서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한 “랩걸”이라는 책을 꺼내 들었다. 처음에는 영서로 시작했지만 내용이 생각 이상으로 난해한 탓에 중단하고 다시 번역서로 시작했다.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나무의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과학자의 눈으로 보는 나무 이야기는 어떨까라는 궁금증이 이 책을 읽게 만든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받는 느낌보다 과학적 사실, 발견들을 기록하는 것이 나중에 숲/나무를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것 같아 관련 내용들을 하나씩 정리하려고 한다.
유칼리투스와 같이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내뿜는 나무들이 있다. 가족여행으로 호주 시드니 블루마운틴을 갔을 때 멀리 보이는 산 전체가 푸르스름한 색을 띠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유칼리투스 내뿜는 휘발성 물질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들었다. 유칼립투스가 발산하는 휘발성 유기 화합물은 잎이나 나무껍질에 상처가 났을 때 감염을 방지해서 건강하게 유지하는 소독약 기능을 한다. 나무가 내뿜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의 여러가지 용도를 과학자들이 밝혀 냈지만 아직도 밝혀내지 못한 기능들이 많다고 한다.
숲 안에서 생산되는 휘발성 유기 화합물의 양은 늘었다 줄었다 한다. 모종의 신호에 따라서 개별적인 화합물의 제조를 껐다 켰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한 신호는 재스몬산으로, 식물에 상처가 나면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물질이다.
4억 년에 걸친 곤충과 식물과의 전쟁은 양쪽 모두 피해를 입었으며 책에서는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1977년 워싱턴 주립대 연구용 숲은 텐트나방 애벌레의 습격을 받아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이 텐트나방 애벌레들은 나무 몇 그루의 이파리를 남김없이 먹어 치우고 다른 많은 나무들도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피해를 준 다음 그 지역 여러 종의 활엽수의 숫자가 엄청나게 줄어드는 현상을 촉발시켰다. 전투에서는 패배해도 전쟁에서는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나무들의 역사를 보면 그 사실이 너무도 극명히 나타난다.
1979년 연구원들은 살아남은 나무들의 이파리를 텐트나방 애들레들에게 먹이고 결과를 관찰했다. 애벌레들이 보통 애벌레들보다 훨씬 천천히 자라고 병색이 완연해진다는 것을 알아냈고 2년 전 같은 나무의 이파리를 먹고 자란 애벌레들과 비교해도 자라는 속도가 훨씬 느렸다. 즉, 이파리에 들어 있는 어떤 화학물질이 그들을 병들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운 일은 1~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자라는 건강한 시트카 버드나무들, 즉 한 번도 공격을 당하지 않은 버드나무들도 텐트나방 애벌레들 입맛에 맞지 않는 화학물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멀리서 자라는 건강한 나무들에서 딴 이파리들을 먹은 애벌레들도 힘없고 병이 들어 2년 전처럼 순식간에 숲을 파괴할 듯한 힘은 없어 보였다.
과학자들은 나무들이 뿌리로 전달하는 신호체계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이와 같은 시트카 버드나무 두 집단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땅 위에서 신호를 주고 받는 것으로 추측했다. 즉, 이 휘발성 유기 화합물들이 적어도 1~2킬로미터는 퍼져나갔고, 다른 나무들은 이를 조난 신호로 받아들여서 이파리에 미리 애벌레 독을 주입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한 것이다. 1980년대 내내 애벌레들은 대대로 이 독 때문에 비참하게 굶어죽었다. 이렇게 장기적인 전략을 채택해서 나무들은 전세를 유리한 쪽으로 바꿨다. 즉, 전투에서는 비록 졌지만 전쟁에서는 이겼다고 할 수 있다.
시트카 버드나무 실험은 모든 것을 바꾼 아름답고도 훌륭한 연구의 예다. 문제가 있었다면 그 연구 결과를 사람들이 믿기까지 20년이 넘는 세월이 필요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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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한번에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제서야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처음에 기대했던 내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그래도 나무에 관해서는 모르고 있던 내용을 접하게 되어 얻은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너무 띄엄띄엄 읽은 탓에 중간에 기억나는 것이 많지 않지만 그래도 오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읽은 부분이 뇌리에 남는다.
전 세계 어디를 가나 “녹색(green)”이라는 단어는 “자란다(to grow)”라는 동사와 어원을 같이한다고 한다. 자유 연상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은 “녹색”이라는 단어와 자연, 휴식, 평화, 긍정이라는 개념을 연관 지었다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녹색을 잠시 스쳐 지나가는 식으로라도 접하면 단순한 업무를 수행하는 데서도 창의력을 향상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전반적인 내용은 저자가 과학자로서 살아오면서 과학에 대한 애정과 일반인들이 보기에 저렇게까지 외골수 적으로 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집착하는 면을 보여 준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주게 되는 일에 대해서도 한참을 지난 후에 한번 돌아보는 면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저자도 그렇지만 같이 평생을 같이 연구를 같이 한 빌이라는 친구가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거의 자기 인생을 바치면서까지 실험에 열중한다. 누가 알아봐 주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외골수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고서는 그렇게 하기 힘들 것이다.
한가지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장시간에 열중할 수 에너지를 가진다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개발자인 나도 닮아야 하는 면도 없지 않다.
2024.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