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나물의 귀족’ 음나무(엄나무)
이른 봄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돋우는 나물에는 냉이, 달래, 머위, 씀바귀 등이 있다. 햇살이 더 따뜻해지면 화살나무, 두릅나무, 음나무, 옻나무, 다래나무 등의 새순을 따서 나물로 먹는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음나무 새순을 ‘엉개’라고 부르며 오래전부터 나물로 즐겨 먹어왔다.
대구경북에서 보통 4월 중순부터 새순이 돋는 음나무는 잎이 완전히 피기 전의 부드러운 새순을 채취하여 끓는 물에 데쳐서 먹는데 쌉싸래한 맛과 풋풋한 향이 입맛을 돌아오게 한다. 이런 까닭에 봄철 산나물의 귀족으로 불리고 있으며 일부 식도락가들은 음나무의 사촌인 ‘봄나물의 대명사’ 두릅나무 새순보다 더 좋은 나물로 여긴다. 음나무에는 인삼의 주요성분인 사포닌 등 기능성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맛뿐만 아니라 건강식품으로써도 주목받고 있다.
음나무 새순은 지역에 따라서 두릅의 아류라는 의미로 ‘개두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국어사전에는 엄나무와 음나무를 모두 표준어로 채택하고 있고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음나무로 등재돼 있다. 아름드리 크기로 자란 나무의 목재는 가볍고 질이 좋아 옛날 나막신을 만드는 데 사용됐다. 또 집안으로 침입하는 잡귀를 막을 요량으로 가시투성이 가지를 대문 위나 문설주에 걸쳐두기도 했다.

가시 많아 붙여진 한자 이름 자동(刺桐)
두릅나뭇과의 음나무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시골집과 밭 언저리나 야산에 크고 날카로운 가시 때문에 유독 눈에 띄는 나무다. 요즘 음나무 새순의 수요가 많다 보니 재배도 늘었다. 예전부터 농촌에서는 음나무 새순을 봄철 별미인 나물로 자주 먹었다. 농촌이나 산촌 사람들만이 즐기는 산채 나물이었고 도시인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봄나물뿐만 아니라 여름철 삼복더위에 허약해진 기력을 충전하기 위해 먹는 이열치열의 대표 보양식인 닭백숙에 가시가 많은 엄나무 가지를 넣는다. 또 긴 잎자루를 따서 돼지고기를 삶을 때 잡냄새를 없애려고 함께 넣는다. 음나무는 이래저래 현대인에게도 쓰임이 많다.
두릅나뭇과의 낙엽활엽교목인 음나무는 높이 25m, 직경 1m 넘게 자라며 잎은 단풍나무 잎처럼 5∼7개로 깊게 갈라진다. 한여름 7, 8월에 황록색 꽃이 피는데 꿀이 많아서 벌들이 모여들며 밀원식물로 가치도 크다. 음나무는 물기가 약간 있고 토심이 깊은 곳과 계곡 근처를 좋아하며 어려서는 그늘진 곳에서 잘 자라지만 클수록 햇빛을 좋아한다.

한자 이름은 자동(刺桐)이다. 잎이 크고 목재의 결이 곱고 비교적 가벼운 특성이 오동나무와 닮았기 때문에 가시 ‘刺(자)’와 오동나무 ‘동(桐)’자를 쓴 모양이다.
귀신도 무서워하는 나무?
음나무의 어원과 관련 다양한 설(說)이 있다. 옛 문헌에는 음나무를 엄나무라고 했다. 『동의보감』 한글본, 『역어유해』, 『물명고』 등 옛 문헌에는 ‘엄나모’라고 기록되어 있다. 박상진 전 경북대 교수의 『우리 나무 이름 사전』에는 “어릴 때 험상궂은 가시가 촘촘하므로 가시가 엄(嚴)하게 생겨서 붙은 이름”이라고 했다. 그러나 엄나무의 한자 ‘엄’은 옛 문헌마다 다르게 나온다. 奄木(『산림경제』), 掩木(『한약집성방』), 欕木(『역암집』) 등 한자의 소리는 같지만 뜻은 다르다. 아마 한자의 뜻과 관계없이 음만을 빌려 쓴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름 유래의 다른 견해는 유기억 강원대 교수가 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나무 이야기』에 나온다. 음나무 가시가 날카로워 귀신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막아준다는 전설과 관련돼 있다. “이 나무로 ‘음’이라는 육각형의 노리개를 만들어 어린아이의 허리춤에 매달아줬다고 하며 이 노리개를 ‘음’라고 했다고 한다.” 즉 ‘음’이라는 부적용 노리개를 만드는 나무라는 뜻에서 음나무의 이름을 유추했다.
사악한 기운을 막기 위해 음나무를 이용한 사례는 여러 군데서 확인된다. 조선 후기 개화 정책에 반기를 든 경북 봉화 출신 강진규(姜晉奎, 1817~1891)는 「유엄목문(諭欕木文)」을 통해 음나무가 지닌 벽사(辟邪)의 의미를 풀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잡귀들의 안방 출입을 막으려고 가시 돋친 음나무 가지를 잘라서 대문 바깥쪽이나 안방 문 위쪽에 걸어두는 세시풍속이 전해온다. 여기에는 귀신이 들어오다가 가시가 목에 걸려 더 이상 들어오지 말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무당이 잡귀를 물리치려고 굿을 할 때도 엄나무를 이용했다.
또 다른 견해는 『조항범 교수의 어원 이야기』에 나온다. 엄나무 ‘엄’의 어원을 ‘牙木(아목)’의 ‘牙’에 대응하는 중세국어 ‘어금니’와 더불어 ‘엄니’에서 근거를 찾고 있다. 크고 날카로운 포유류의 이빨을 가리키는 말인 ‘엄니’에서 ‘엄’을 따와 예리한 가시가 있는 나무의 이름으로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가는잎음나무는 음나무와 비슷하지만 잎을 보면 갈라진 부분이 깊고, 뒷면에 흰털이 있다. 잎의 갈래 조각은 음나무보다 좁으며 긴 타원 모양이고 톱니가 있으며 끝이 뾰족하다. 가지가 굵고 잿빛이며 폭이 넓은 가시가 많다. 생육 특성은 음나무처럼 어릴 때는 다른 나무 밑에서 생육하다가 성장하면서부터는 빛을 좋아하는 성질이 있다. 토심이 깊고 비옥한 곳에서 생육이 좋고 키는 약 25m까지 자란다.

음나무 가시
식물의 가시는 끝이 날카롭고 뾰족하게 목질화돼 단단해진 것을 아울러 부르는 말이다. 가시는 잎이나 턱잎이 변한 엽침(葉針), 껍질이 변한 피침(皮針), 가지가 변해서 된 경침(莖針) 등으로 나뉘며, 그 역할은 외부의 공격이나 해코지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음나무의 가시는 찔레나무나 장미, 산초나무와 같은 피침으로 힘을 줘서 밀면 나무껍질에서 떨어진다.
음나무의 가시는 맛이 좋은 음나무 어린 순이나 잎사귀를 노리는 초식동물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생존의 수단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음나무는 굵고 오래되면 줄기에 가시가 거의 없어진다. 어린나무나 사람이 인위적으로 가지치기를 많이 해서 키가 작은 음나무에는 가시가 전체적으로 빼곡하게 덮여 있지만 깊은 산속의 음나무는 가시가 비교적 적고 무디다. 왕성하게 성장하는 어린나무는 가시를 달아 그 위엄을 뽐내지만 줄기의 지름이 한 뼘쯤으로 굵어지고 키가 십여m쯤 자라게 되면 아래쪽의 수피부터 차츰 회색으로 짙어지며 가시는 거의 사라진다.
출처: 매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