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을 씻어내는 천년의 시간, 월정사 전나무 숲

세속을 씻어내는 천년의 시간, 월정사 전나무 숲

월정사와 역사를 함께 해 ‘천년의 숲’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에 들어서면 향긋한 전나무 냄새에 휩싸인다. 누군가 ‘숲은 마음을 치료하는 녹색 병원’이라 했던가. 월정사 전나무 숲을 걷다보면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부안 내소사, 남양주 광릉수목원과 더불어 한국 3대 전나무 숲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월정사 전나무 숲길은 심신의 세속을 씻어내는 특별한 숲일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소나무 대신 전나무가 들어선 곳

멋들어지게 솟아 있는 소나무를 보는 것이 강원도 여행의 백미라면, 월정사 전나무 숲은 오대산 여행의 별미라고 할 수 있겠다. 월정사 전나무 숲은 일주문부터 금강교까지 1km 남짓한 길 양쪽에 있었다. 평균 수령 80년이 넘는 전나무가 자그마치 1700여 그루란다. 사찰로 들어가는 세 개의 문 중 첫 번째 문인 일주문 안쪽으로 숲이 조성돼 있기 때문에 전나무 숲은 월정사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월정사는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만나고 온 자장율사가 643년 지금의 오대산에 초막을 짓고 수행을 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원래는 소나무가 울창하던 이곳이 전나무 숲이 된 데는 사연이 있었다. 고려 말 무학대사의 스승인 나옹선사가 부처에게 공양을 하고 있는데 소나무에 쌓였던 눈이 그릇으로 떨어졌다. 그 때 어디선가 나타난 산신령이 공양을 망친 소나무를 꾸짖고 대신 전나무 9그루에게 절을 지키게 했다는 것이다. 그 후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월정사를 지켰기에 월정사 전나무 숲은 ‘천년의 숲’이라 불리게 됐단다.

몸의 세속을 씻어내는 길

전나무는 나무에서 젖(우유)이 나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걸 이곳에 와서 처음 알았다. 탄소와 수소가 결합된 바늘잎에서는 상큼한 향이 뿜어져 나온다. 식물성 살균물질인 피톤치드와 음이온이 숲길을 가득 채우는 느낌이다. 최고령 370년에 달하는 아름드리 전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 배경 속에 와 있는 것 같다. 숲길 중간에 2006년 10월 태풍에 쓰러졌다는 전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40m가 넘는 몸체가 꺾이고 남은 나무 밑동은 성인 2명이 들어가도 남을 정도로 거대하다. 수령 500년이 넘는 최고령 나무였다고 하니 쓰러진 뒤에도 풍기는 위용이 남다르다.

숲길 옆을 흐르는 오대천 상류 계곡은 눈이 쌓인 채로 얼어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따뜻한 날에는 수달, 삵, 족제비 등 야생동물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고 한다. 매일 오전11시와 오후 1시에 열리는 전나무 숲 자연해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마음의 세속을 씻어내는 길

길을 걷는 연인과 가족 사이로 행자복을 입은 사람이 눈에 띈다. 혼자 천천히 걸으며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비워내는 듯한 표정. 월정사 단기출가학교의 입학생이다. 일반 사찰의 템플스테이와는 달리 삭발을 하고 행자복을 입은 채 고행을 이어가는 프로그램이 월정사 단기출가학교다. 그 시작이 전나무 숲을 삼보일배하며 비워내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전나무 숲길에는 2004년부터 시작된 단기출가학교 입학생들을 기리는 삭발기념탑이 세워져 있었다.

일주문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마을 신을 모시는 성황각이 보인다. 예전에는 이 숲길 안쪽에 마을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절의 시작을 뜻하는 일주문 안에 성황각을 그대로 남겨놓았다는 것은 불교가 토속신앙을 포용한 흔적이다. 그래서일까. 굳이 불자가 아니어도 전나무 숲길을 걸으면 세속적인 마음을 씻어내는 기분이 든다.

전나무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금강교가 나오고, 그 위에 바로 월정사가 위치해 있다. 한국전쟁 때 영산전, 진영각 등 17동의 건물과 월정사 소장 문화재가 불에 타 재로 변한 뒤 1964년 탄허 스님이 월정사를 중건했다. 현재는 국보 제 48호인 팔각구층석탑만이 고려 초기 사찰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전나무 숲길을 걷고 난 뒤 월정사에서 절밥을 맛보고 하룻밤 몸을 누이는 것도 좋다. ‘숲은 마음을 치료하는 녹색 병원’이라는 말이 전나무 숲을 걸어 월정사에 닿으면 더욱 실감나기 때문이다.

출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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