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숲은 다르게 말한다 – 독일 숲해설 현장을 가다 1

유럽의 숲은 다르게 말한다 – 독일 숲해설 현장을 가다 1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언어는 우리가 대화를 나눌 때 사용하는 수단으로 인간들만이 유일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나무들도 서로 대화를 나누는지 알아본다면 흥미롭지 않을까? 나무들은 소리를 내지 못하므로 분명 사람처럼 대화할 수가 없다. 하지만 밝혀진 바에 의하면 나무들은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서로 소통하고 있으며 향기를 그중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한다고 한다.

과학자들이 인간도 향수나 땀에 묻어나는 체취(페로몬)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배우자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것처럼, 나무들도 향기를 매개로 비밀스러운 의사소통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나무도 상처를 입으면 인간처럼 전기 신호를 이용해 통증을 감지하고 대응한다. 비록 그 속도가 1초에 약 0.8cm(1/3 인치) 정도로 매우 느리지만, 뿌리부터 잎까지 정보를 공유하며 상황에 맞는 특정 방어 물질(향기성분)을 내뿜으며 대처한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나무는 자신을 공격하는 해충의 타액(침) 성분을 정밀하게 분석하여 적이 누군지 식별해 낼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사람들처럼 미각과 같은 감각이 있음을 시사한다. 식별을 마친 나무는 단순히 독성을 내뿜는것에 그치지 않고, 그 해충의 천적을 유인하는 특정 페로몬을 방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느릅나무는 자기 잎을 갉아 먹는 애벌레가 나타나면, 그 애벌레 몸속에 알을 낳는 기생말벌(parasitic wasps)을 향기로 불러들인다고 한다. 결국 자라난 말벌의 유충이 애벌레를 안에서부터 먹어 치우게 함으로써 느릅나무는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고 성장을 이어가게 되는 것이다.

나무는 직접적인 화학 물질로 자신을 보호하기도 한다. 참나무는 독성이 있는 탄닌이라는 물질을 이용해 곤충을 물리치고, 버드나무는 아스피린의 원료인 살리실산을 뿜어 자신을 방어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어 물질을 제조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므로 특정 페로몬처럼 공기 중에 향기를 퍼뜨리는 방식으로 조기 경보 시스템을 병행으로 가동해 생존에 도움을 얻는다고 한다.

하지만 나무는 오로지 향기를 퍼뜨리는 방식에만 의존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바람이 닿지 않는 일부 이웃의 나무들은 위험한 상황을 아예 눈치채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Finding the Mother Tree)의 저자인 수잔 시마드(Suzanne Simard) 박사는 나무들이 뿌리 끝에 형성된 균류 네트워크를 이용해 화학 신호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위험을 알린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방식의 장점은 공기 중 전달과는 달리 날씨에 상관없이 작동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나무는 뿌리와 균류를 통해 종을 초월한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고 한다. 나무의 뿌리는 수관보다 훨씬 넓게 이웃과 서로 얽힌 상태로 퍼져 있어, 사람들 사이의 외톨이처럼 소통을 거부하는 홀로서기 나무가 있다 하더라도 중재자 역할을 하는 균류에 의해 정보가 강제로 전달된다고 한다. 이 균류들은 마치 전 지구에 깔린 인터넷(WWW – World Wide Web) 광섬유 케이블처럼 작동한다고 하며 찻숟가락 하나 정도의 숲속 토양에는 이러한 균사가 수 킬로미터에 이어질 정도로 밀도가 높아 학계에서는 이 거대한 지하 통신망을 ‘우드 와이드 웹’(Wood Wide Web)이라 부른다고 한다. 이러한 촘촘한 균사체는 숲 전체를 연결해 곤충 습격이나 가뭄 같은 위험 신호를 실시간으로 공유한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과거 숲해설가 자격증 취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숲과 나무에 관한 관심과 열정이 최고조일 때 우연히 알게 된 책의 내용 일부로 나무의 언어(The Language of Trees)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사람의 감각기관 자극이 전기 신호로 전달되는 것처럼 나무들도 느리긴 하지만 1초에 약 0.8cm(1/3 인치) 정도로 전기 신호를 이용해 상황을 전파한다는 내용과, 나무의 뿌리는 균류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망(www)처럼 작동한다는 사실은 정보기술(IT)을 직업으로 하는 나에게 놀라운 내용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언어와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소통 수단은 아닐지라도 나무들도 다양한 방법으로 서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점에서 사람의 언어를 나무의 언어로 확장시켜 해설하는 부분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페터 볼레벤과 그의 대표 저서, 『The Hidden Life of Trees』

숲해설가들이 나무의 생태적인 사실에 더해 관련 전설이나 교훈을 엮어 유익한 내용으로 숲해설을 전개하는 방법도 좋지만 앞서 소개한 내용처럼 과학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나무를 사람과 동일한 선상에 놓고 접근하는 방법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이런 선호는 자연스럽게 그 책의 저자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해당 책의 저자는 ‘페터 볼레벤(Peter Wohlleben)’으로 독일의 산림학자이면서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The Hidden Life of Trees』(국내에서는 『나무수업』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 위즈덤하우스 – 편집자주)의 작가임을 알게 되었다. 앞서 소개한 나무의 언어라는 내용도 이 책에서 가져왔다. 하나에 꽂히면 끝을 보고자 하는 나의 성향 때문인지 내 친김에 『The Inner Life of Animals』(『동물의 사생활과 그 이웃들』제목으로 번역 출간, 이마 – 편집자주) 『The Secret Wisdom of Nature』(『자연의 비밀 네트워크』로 번역 출간. 열림원 – 편집자주), 『The Heartbeat of Trees』등 페터 볼레벤이 쓴 10 여권의 책을 모두 읽어 보았다.

페터 볼레벤이 쓴 모든 책에서 소개되는 이야기는 단순 지식 전달이 아닌 숲과 나무, 나아가 자연에 대한 사랑을 진심으로 담아낸 것 같아 더 감명 깊게 다가왔다. 그리고 특히 유럽 나라들의 특징인지 모르겠지만 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더욱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나와 같은 숲해설가들도 이런 관점을 숲해설 내용에 녹여 넣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생각으로 이어지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좀 더 알아보자는 생각으로 우선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들을 하나씩 접하긴 했지만 많은 부분이 영어가 아닌 독일어로 되어 있었다. 유튜브의 번역기능을 이용해 영어로 실시간 번역을 해도 말하는 속도와 맞지 않고 계속 자막에 시선이 쏠려 상황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답답함을 느꼈다. 관련 내용을 좀 더 알아보던 차에 볼레벤 숲아카데미(Wohlleben Forest Academy)가 있음을 확인하고 여기에서 진행하는 숲해설 프로그램에 참가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때가 2021년이니 벌써 4년이 지났다.

Forest Academy 홈페이지 
Forest Academy 숲해설 프로그램

늘 마음 한켠에 버킷리스트처럼 간직하고 있다가 2023년에는 회사의 안식년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이 되어 이 시기를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2022년 여름 무렵 숲아카데미 홈페이지에 있는 메일 주소로 숲아카데미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싶다는 내용과 함께 영어로도 숲해설이 가능한지문의했다. 프로그램 대부분이 독일어로 진행되어 숲해설 프로그램에 참가해도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답신이 도착했다. 영어로 하는 프로그램이 있긴 하지만 정기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으니 주기적으로 홈페이지를 확인해 보라는 내용이었다. 단지 한 통의 메일로 이렇게 사람의 마음이 설레고 기대감이 부풀기는 처음인 것 같았다. 가능함을 확인했으니 관련 준비에 돌입했다. 우선 2023년 5월경으로 항공편을 예약한 후 홈페이지를 주기적으로 방문하면서 가능한 시기를 확인했다.

해가 바뀌어 봄이 되어도 메일의 내용과 다르게 원하던 숲해설 프로그램의 일정은 홈페이지에 보이지 않았다. 조금씩 조바심이 일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3월이 되어도 변화가 없자 부풀었던 마음은 약간씩 절망으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기다릴 수는 없어 다시 숲아카데미로 메일을 보내 상황을 확인했다. 회신받은 메일의 내용은 당황스러웠다. 영어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계획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서운함도 있고 해서 그동안 주고받은 메일 내용과 함께 이미 프로그램 참가 준비를 마친 상태이니 추천해 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는지 되물었다. 몇 번의 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비용은 좀 더 올라가지만 프라이빗(private) 숲해설이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았다. 우선 안도의 한숨을 쉬고 그렇게라도 진행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처음에는 혼자 가려고 계획을 하였지만 유럽 간다는 사실을 알아챈 아들 두 녀석이 같이 가겠다고 달라붙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셋이서 오붓하게 숲해설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아들 녀석들에게는 오히려 더 좋은 경험이 될 뿐만 아니라 부자간 관계가 더욱 돈독해 질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니 내가 더 설레었다.

볼레벤 숲아카데미에서 제공하는 숲해설 프로그램은 몇 시간에서부터 며칠에 걸친 프로그램까지 매우 다양했다. 나는 일정상 2시간 코스의 숲해설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후 남는 시간은 아들과 셋이서 숲아카데미 근처의 괜찮은 트레킹 코스를 찾아 트레킹을 하면서 독일의 숲과 자연환경을 즐기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드디어 독일로 출발하는 그날이 다가왔고 숲해설 도중 혹시 필요할지 몰라 루페와 카메라 그리고 작은 식물도감도 준비했다. 또한 페터를 혹시 만나게 된다면 사인을 받을 요량으로 『The Hidden Life of Trees』 책도 챙겼다. 책 속에는 페터에게 직접 전달해 주기 위해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해 포스트잇 메모지에 적은 다음 싸인 받을 페이지에 붙여 놓았다. 그리고 숲해설을 마치고 기회가 되면 전해 주려고 작은 선물도 같이 준비했다.

아들과 함께 긴 비행을 거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숲아카데미가 있는 베르쇼펜(Wershofen)의 작은 숲속 마을까지 가려면 차로 3시간 가까이 직접 운전을 해야 했다. 다행히 인터넷으로 렌터카를 예약해 둔 터라 어렵지 않게 차를 받아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도움으로 목적지로 향할 수 있었다.

보리밭과 유채꽃이 펼쳐져 있는 독일의 전원 풍경
독일 전통건축 양식의 호텔

외국에서 처음 차를 몰아봐서 그런지 처음에 낯선 감이 있었지만 이내 적응할 수 있었다. 독일의 고속도로 아우토반을 시원하게 달리면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광활한 보리밭과 유채꽃 풍광은 여기가 유럽임을 새삼 느끼게 해 주었다. 아쉽게도 운전 중이라 스쳐 지나가는 이국적인 풍광을 사진으로 담을 수 없었는데 뒷자리에 앉은 아들이 그나마 찍어 놓은 사진 덕에 그때의 여운을 잠시 느낄 수 있었다.

낮시간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한 터라 해가 지기 전에 목적지인 베르쇼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는 길에 푸른 초원의 언덕을 넘고 독일가문비 나무와 너도밤나무가 울창한 숲속 도로를 지날 때의 경험과 감동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다.

베르쇼펜 마을 풍경

베르쇼펜은 작은 시골 동네라서 아주 조용하고 여유로웠다. 걸어서도 1시간 정도면 동네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크기 같았다. 또한 동네 전체가 너무 예쁘고 잘 가꿔져 있어 주위의 풍광은 어디선가 그림으로 본 듯 목가적인 정취가 물씬 풍겼다.

우리나라에서 산과 숲이 주는 하이킹 이미지 즉, 오르는 대상과 다르게 여기 독일 베르쇼펜의 숲은 언제든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산책로 또는 트래킹에 더 잘 어울리는 이미지로 다가왔다. 숙소를 잠시 나와 동네에서 내려다 보이는 숲은 왠지 숲과 일상 생활의 경계가 없는 듯한 느낌이었다.

베르쇼펜 숲아카데미 건물

이런 풍광을 보고 있자니 내일 참가하게 될 숲아카데미 프로그램이 더욱 설레고 기대되었다. 지도를 보니 숲아카데미는 숙소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해가 지기 전에 잠시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그곳이 실제로 내 눈앞에 펼쳐질 때 어떤 감정이 들지 궁금했다. 아들을 숙소에 남겨 둔 채 혼자 약 10 여분 정도 걷고 나니 ‘베르쇼펜 숲아카데미(Wohlleben Forest Academy)’에 도착할 수 있었다. 눈앞에 마주한 숲아카데미 건물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고 주위와 잘 어울리는 목조 건물이었다. 아쉽게도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불이 꺼져 있었고 업무를 마감한 것 같았다. 하지만 버킷리스트로 간직했던 만큼 여기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에 나 자신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숲아카데미 근처에서 한참 머물며 이것저것 둘러본 후 숙소로 돌아와 아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장시간 허기지기도 했겠지만 주문한 음식이 아들 입맛에 잘 맞는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식당 매니저와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었다. 흥미로운 것은 동네에는 간단하게 물건을 살 수 있는 편의점이나 마트가 없다는 것이었다. 마트까지 가려면 차로 20분 정도 가야 한다고 했다. 불편할 것 같았지만 이 동네 사람들은 여유로워서 그런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아마도 동네를 품은 자연환경이 사람들의 품성에 영향을 준 것 같았다. 식사를 하면서 주위를 보니 평일인데도 나 같이 숲해설 참가를 위해 온 것처럼 보이는 중년의 손님도 여럿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잠시 나왔을 때 어둠이 내려앉은 독일 시골 마을은 더없이 조용하고 한적했다. 저녁이 되면서 약간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정도의 비라면 내일 숲해설 프로그램을 참가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을 거라고 스스로 희망 회로를 돌리면서 한국에서 독일까지 이어진 오늘의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이 글은 2023년 5월 봄기운이 가득할 때 아들과 함께 독일 베르쇼펜 숲아카데미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경험과 느낌을 협회지에 기고할 생각으로 쓰기시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때의 기억을 하나씩 정리하면서 쓰다 보니 분량이 늘어 한 편으로는 전체 내용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글의 제목과 다르게 실제 숲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경험하면서 독일의 나무와 숲, 그리고 숲해설을 듣고, 보고, 느낀 내용을 이야기하는 단계까지 채 이르지도 못하고 여기서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려 독자들에게는 죄송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까지의 이야기로도 나의 눈높이에서 독일의 숲과 자연에 대한 감상을 전할 수 있으리란 생각에 굳이 한 편의 분량으로 할애했으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다음호에서는 본격적으로 숲해설에 참가해 겪은 이야기와 아들과 함께 근처 아이펠(Eifel) 국립공원을 트레킹하면서 보고 느낀 내용을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가 보고자 한다. 그리고 향후 기회가 된다면 유럽 사람들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숲해설이라는 내용으로 단편의 글을 하나씩 협회지에 옮겨 보려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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