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숲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지난 협회지 기고를 통해 소개한 독일에서의 숲해설 프로그램 참가 경험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유럽, 특히 독일 숲해설 프로그램의 구성과 그 나라 사람들의 숲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분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국의 숲에서 단발성으로 이루어진 체험이라 그 나라 전체의 숲해설로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관련 서적을 통한 간접 체험과 초보 숲해설가로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숲을 대하는 그 나라의 관점을 정리하고 독자들과 나누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낯선 환경에서의 숲해설과 트래킹 체험을 바탕으로 숲을 바라보는 관점이라는 큰 주제로 회고하자니 막연하고 선뜻 내딛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고민 끝에 우리나라의 숲해설과 비교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면 그나마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더라도 그 나라 특성에 맞게 진행되는 숲해설 프로그램을 한 쪽의 시각으로 우열을 가리듯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같은 숲이라도 지형적인 특성과 기후, 숲을 바라보는 그 지역의 문화적 특성에 따라 숲을 대하는 관점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숲을 대하는 자세와 숲을 주제로 사람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이며, 어떤 방법과 수단을 활용하는지와 같은 것들을 비교해 보는 것은 나와 같은 숲해설가들 사이에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현업에 묶인 몸이라 아직 이렇다 할 숲해설 경력을 쌓지는 못하고 있어 우리의 숲해설은 이렇다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과거 협회에서 이수한 숲해설가 전문과정과 이후의 실습, 그리고 참관수업을 통해 얻은 경험을 반추해 보면 비록 숲해설가 선생님들 사이에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전달하려는 숲해설 컨텐츠와 전달 방식은 대체로 유사하지 않을까 한다. 또한 목본연구회처럼 협회 동아리 활동 과정에서 풍부한 경험과 해박한 지식을 소유하고 계신 강사선생님들의 강의 컨텐츠를 보더라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숲해설가들이 숲해설 프로그램을 통해 전달하려는 컨텐츠와 스토리텔링 방식은 크게 3가지 형태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나무의 명칭과 분류, 특징으로 시작해서 쓰임새나 신화 또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로 삶의 교훈과 생활의 지혜를 전달하는 형태가 많은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본다. 숲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생강나무를 간단한 예로 들자면, 이른 봄의 노란색 꽃 그리고 잎에서 나는 생강 냄새로 시작해서 조상들이 씨앗의 기름으로 동백기름처럼 사용했다거나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과 같은 요소들은 스토리텔링의 주된 레퍼토리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숲해설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생물의 식생 정보를 인간의 삶으로 투영해 이와 맞닿은 친근한 이야기로 바꾸어 전달하는 것이 주요 해설 방식이라고 본다.

다른 형태로는, 숲해설을 진행하면서 말로 전달하는 방식에 그치지 않고 교구를 활용한 오감 체험과 생태관찰을 직접 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이는 참가자들이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직접 숲을 느껴보도록 하는 것이 목적일 것이다. 나무줄기에 청진기를 대고 물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게 하거나 루페를 활용해 나뭇잎의 뒷면을 살펴보게 함으로써 자연을 더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는 헬리콥터 프로펠러처럼 생긴 단풍나무 열매를 직접 날려보고 씨앗에 왜 날개가 달렸는지 그 이유 알아가는 형태로 물리적 교구를 활용하여 오감을 일깨우고 현장 중심의 체험을 유도하는 것이 우리의 숲해설 특장점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숲해설 프로그램에는 자연물을 활용한 놀이나 치유를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숲을 자연 놀이터 또는 심신을 치유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특히 유아나 가족 단위의 탐방객들에게는 놀이터로, 성인들에게는 휴식이라는 컨텐츠를 제공하는 셈이다. 예를 들면 숲속의 자연물을 이용해 곤충 인형을 만든다거나 성인들에게는 맨발 걷기 또는 피톤치드 호흡과 같은 산림욕을 통해 심신의 피로를 덜어주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숲해설은 단순 생태 지식을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연물 공예, 숲놀이, 숲속 명상과 같이 현대인의 마음을 다독여 주는 치유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숲해설 형태와 특징을 정리해 보니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은 이렇다. 우리나라의 숲해설은 미국 자연 해설에서 시작된 숲해설을 1990년대 후반 일본의 운영 사례를 모델로 삼아 정부 주도로 도입하다 보니 컨텐츠와 진행 방식이 비슷하며 틀이 정해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독일에서 숲해설 프로그램을 몸소 체험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의 숲해설 컨텐츠와 진행 진행방식 이외에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유능한 숲해설가 선생님들의 수업 방식을 벤치마킹해서 내 것으로 만들지 또는, 보다 많은 종류의 나무 식생 정보와 여기에 얽힌 스토리를 습득할 수 있을지가 주된 관심사였다. 하지만 독일에서의 숲해설 체험은 또 다른 방식으로 숲을 바라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전달하는 방식도 다를 수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 어쩌면 우물안에 갇혀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이라도 숲을 대하는 관점을 더욱 다양하게 만든다면 나와 같은 숲해설가들 뿐만 아니라 숲을 찾는 사람들 모두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지금부터는 독일에서는 어떤 시각으로 숲을 바라보는지 우리의 상황과 비교하면서 이야기를 풀어 보고자 한다. 앞선 협회지 기고 글에서 복선 형태로 일부 언급한 내용이기도 하지만 유럽, 특히 독일의 숲해설 프로그램은 나무와 숲을 인간 공동체와 동등한 수준에서 사회적 생물학적 네트워크로 파악하고,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관조적이고 생태 중심적인 철학을 기반으로 접근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숲해설 프로그램은 나무의 이름이나 생물학적 분류보다 이들이 서로 어떻게 소통하고 연대하는 지, 죽은 나무가 생물 다양성에 어떻게 기여하는지와 같이 생태적 관계와 서사에 집중하는 형태를 하고 있다. 사실 숲해설 체험 과정에서 나무를 대상 그 자체로 바라볼 뿐 우리의 경우처럼 나무의 특징이나 동정방법 등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숲해설 프로그램에서 가이드였던 Jonas가 들려준 이야기를 가져오자면 숲속 나무들은 인간 사회의 공동체처럼 개별적으로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생존을 지켜 주기 위해 영양분을 공유하고 위기가 닥칠 때는 연대를 통해 공동으로 대처한다고 한다. Wood Wide Web이라는 용어로 설명한 것처럼 너도밤나무를 비롯한 숲속 나무들은 땅속 뿌리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어 영양분을 서로 공유하고 날씨와 상관없이 소통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환경이 좋은 곳에 자리 잡은 나무는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영양분을 다른 나무들과 함께 공유함으로써 위치나 조건이 다르더라도 모두 비슷한 수준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며, 병충해나 가뭄으로 아픈 나무가 생기면 이웃 나무에게 영양분을 집중적으로 보내 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무들이 연대하는 이유가 태풍이나 가뭄과 같은 재해를 공동으로 대처해 서로를 지키는 것이 곧 자신을 지키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즘과 같은 여름철에 화면으로 태풍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가로수들이 속절없이 뽑히거나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 이 같은 해설에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또한 숲해설가와 참가자들 사이의 관계에도 인식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됐다. 우리는 자격증 체계를 기반으로 교사-학생 관계처럼 숲해설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성격이 강하고 참가자들의 만족도와 교육 효과도 같이 고려하는 편이라면 독일에서 숲해설가는 숲을 사람과 동등한 공동체의 주체로 보게 만드는 조력자 역할로, 참가자들은 숲이라는 생태계에 “잠시 방문한 손님” 정도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독일 너도밤나무 원시림으로 들어섰을 때 가이드가 낙엽속에 새싹이 돋아나고 있으니 밟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여러 번 말한 것도 숲을 하나의 공동체로 우리를 숲에 잠시 방문한 손님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건강해 보이는 너도밤나무 숲에서 가이드가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새싹과 어린 묘목 그리고 아름드리 나무가 서로 조화롭고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며 나무학교(Tree School)이라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어린 나무들이 어머니 나무의 보살핌과 통제 속에서 생존에 필요한 지혜를 배워나가는 과정을 학교에 빗대어 설명한 것인데 우리가 학교에서 지혜를 배우는 것처럼 사람과 동등한 공동체의 주체로 숲을 설명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어린나무들이 어머니 나무들로부터 배우는 지혜는 대략 이런 것들이다. 어머니 나무는 커다란 가지와 넓은 수관으로 햇빛을 거의 차단하고 아래에서 자라는 어린 자식 나무들에게는 아주 미량(약 3%)의 빛만 허용한다. 이렇게 하면 어린나무는 일 년에 불과 수 밀리미터 정도로 아주 천천히 자라게 된다. 가이드가 무릎 정도 높이의 어린 너도밤나무의 나이를 확인하더니 25년 정도 된다고 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어떻게 보면 당장은 성장이 더뎌 보이지만 어린나무가 장수하기 위해서는 필수 과정이라는 것이다. 느리게 성장하면 세포가 극도로 조밀해지고 내부에 공기 구멍이 줄어들어 목질이 단단해지며 이로 인해 곰팡이나 해충의 침투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과정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고, 강풍이나 겨울에 눈의 무게를 받더라도 줄기가 잘 부러지지 않는 강인한 모습을 갖춘다는 것이다.

숲해설 과정에서 나무의 특징을 설명할 때 생존 전략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이는 특정 나무가 생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활용하는 방식이나 지혜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참가자들의 이해를 돕도록 사용하는 말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나무의 생존 전략을 이야기할 때 개별 나무에 초점을 맞춰 스토리텔링하는 것이 특징인 것 같다. 예를 들면 참나무나 단풍나무는 어떤 형태의 씨앗을 맺고 어떤 방법으로 퍼뜨려 번식하는가 식이다. 동일한 생존 전략을 두고 독일에서는 개별 나무에 맞춰 설명하기보다 생태계 관점으로 확대하여 설명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우리는 은사시나무나 버드나무처럼 비교적 가벼운 씨앗을 가진 나무는 발아율이 낮은 탓에 엄청난 양의 씨앗을 바람에 날려 되도록 멀리 퍼트리는 방식으로 생존 전략을 구사한다고 설명하곤 한다. 그러나 동일한 현상을 두고 독일에서는 인간 사회에서의 탐험가처럼 홀로서기를 선호하는 개척자 나무(Pioneer Trees)에 비유하며 설명한다. 태풍이나 산불, 산사태 등으로 인해 기존의 숲이 사라지고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황폐한 빈터에 가장 먼저 진입하여 뿌리를 내리는 생태계의 특공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들 나무들의 특징은 햇빛에 대한 욕심이 강하고 빈터에 떨어지면 엄청난 속도로 싹을 틔우고 자란다. 하지만 빠른 성장으로 인해 목질이 조밀하지 못하고 무른 탓에 곰팡이나 해충의 공격에 매우 취약하며 강한 바람이나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쉽게 부러진다며 생태계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그리고 이들 나무가 만든 그늘 아래에서 너도밤나무나 참나무와 같은 음수가 시간을 두고 서서히 자라나 넓은 수관으로 개척자 나무의 키를 덮어버리면 오히려 이들의 그늘에 막혀 개척자 나무는 결국 말라 죽게 되는 천이 과정으로까지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처럼 생존 전략 이야기가 한 나무에 그치지 않고 생태계 안에서 다른 나무들과 어떤 역학관계에 있는지까지 확장해 설명한다. 은사시나무와 같은 속성수의 생존 전략을 굳이 비유하자면 페터 볼레벤은 자신의 저서에서 “빠르게 살고 일찍 죽는 전략(Burnout)”이란 말로 표현한다.

탐방객들에게 숲해설을 진행할 때 활용하는 교구에도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처럼 시각적, 감각적 오감을 깨우는 놀이를 위해 해설가가 직접 교구를 챙겨 나눠주는 방식으로 진행하지는 않는 것 같다. 교구를 활용하면 자연 관찰에 흥미를 더하고 연령에 관계 없이 몰입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을 것 같은데 독일에서는 인공적인 교구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숲속 현장에서 직접 얻을 수 있는 자연물 위주로만 활용하는 것 같았다. 쓰러진 고목을 활용한다거나 숲속 바닥에 누워 높은 수관을 바라보게 하는 등 도구 활용을 최소화하고 자연 상태에서 숲과 일대일로 마주하게 한다는 것이다. 독일 숲해설 프로그램 중에는 각자 침낭, 전등, 매트 등 최소한의 준비물만 가지고 2박 3일간 숲에서 지내는 프로그램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독일 숲해설 과정에서 가이드가 숲길 한쪽에 쌓여있는 고목을 활용하여 숲속 알람 시스템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 준 것이 기억에 남는다. 나무줄기를 타고 소리가 어떻게 전달되는지 처음 알게 된 후 놀라고 재미있었던 것처럼 분명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숲을 즐기는 문화에도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의 숲은 산과 거의 동의어로 인식한다. 지형적 특성상 가파른 산길이 많아 숲에 들어가는 것은 곧 등산이라는 신체적 활동과 직결된다고 본다. 그리고 정상에 도달했을 때의 성취감과 탁 트인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며 느끼는 호연지기를 즐거움으로 삼는다. 여기서 개인적으로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등산 문화가 확산되다 보니 근래 탐방객들의 안전을 위해 데크길 또는 야자 매트와 같은 편의시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는 숲으로의 접근성을 높이고 보행에 도움을 주지만 숲이 이런 구조물 위에서 바라보는 대상으로 전락하지는 않을까 그리고 사람과 숲 사이의 간극이 벌이는 부작용을 낳지는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지난 협회지 기고 글에서도 언급한 내용으로 독일의 숲은 주거지 바로 옆이나 구릉지 또는 평지를 중심을 발달해 특별한 목적 없이도 흙길과 숲바닥을 그대로 밟고 거니는 산책 문화가 발달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처럼 치유나 등산을 위해 사전 일정을 계획하고 접근하기보다 일상적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장소로 인식된다. 이런 특성으로 독일 사람들에게 숲은 단순한 야외 공간이 아닌 삶의 일부 또는 문화적 정체성으로 그려진다고 한다. 이를 표현하는 독일어로 발데인잠카이트(Waldeinsamkeit)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숲(Wald)과 고독·외로움(Einsamkeit)이 합쳐진 단어로, 숲속에서 홀로 걸음을 멈추고 느끼는 깊은 고요함과 평온함, 그리고 자연과 하나 되는 느낌을 뜻한다고 하며 독일 고유의 감성적·철학적 개념이라고 한다. 비유하자면 한 때 유행했던 혜민스님의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느낌이지 않을까 유추해 본다.

이번 기고 글부터 어떤 내용으로 독자들과 만날까 고민하다 독일 숲해설 프로그램을 참가하면서 나름 최대 수확이라고 여겼던 부분을 독자들과 먼저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숲해설은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그간 정석처럼 여겨 오던 숲해설 방식을 다른 관점으로도 접근할 수 있구나 라고 느꼈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개인적으로 틀을 벗어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숲해설가 선생님들도 이런 내용이면 분명 좋아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이런 것은 혼자 묵혀두기보다 나눌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번 협회지에서는 숲해설을 바라보는 시각이란 주제로 내용을 채워보았다. 공식적으로 숲해설가 타이틀을 갖고 있긴 하지만 장롱면허일 뿐이고 더구나 현업에 묶인 탓에 오랫동안 숲해설과는 살가운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번 글에서 언급한 우리나라의 숲해설 내용에 현재 상황을 잘 반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더라도 독자들의 너른 혜량을 바라는 마음이다.

닫힌 사고로 대상을 바라보면 그 생각의 틀을 깨기가 쉽지 않다. 비록 하찮은 자극이라도 틀을 깨는 촉매 역할을 한다면 그 시도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 글에서 소개한 독일 사람들의 숲을 바라보는 관점이 우리의 숲해설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를 벗어나 다양한 나라와 문화권에서 행해지는 숲해설을 체험하고 프로그램도 서로 교류해 나간다면 분명 지금보다 더 경쟁력 있는 숲해설이 될 것이고 숲을 찾는 사람들 또한 유익하고 의미있는 시간으로 채울 것으로 확신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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